찬바람이 아직은 씽씽하게 불던 봄날 저녁............라랄라, 용기 백배!! 나는 할수 있다를 외치며 강남의 ,정확히 삼성, 아니 선릉역부근의 그곳을 찾던 날. 예쁘게 정장을 차려 입고, <-----그 전날 거금? 00원을 주고 산 블랙의 투피스 ^^* 의기양양하게 바로 그 건물앞에서 한 남자에게 인계되었다. 나를 실고 온 차는 떠나버리고, 난생 처음보는 낯선 남자--->아저씨 냄새가 팍팍 풍기면서 왠지 음침해보이는......를 따라 붉은 색 Q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지하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나. 10명 횡대로 주욱 늘어서서 갈만큼 널찍한 타원형 계단을 지나 커다란 룸안으로 안내되었다.
“흰둥아,밥 잘 먹고 있어.이따가 놀아주께.”
엉덩이를 흔들며 민지에게 코를 가까이대며 반겨하는 흰둥이에게 민지는 손을 가만히 가져다댑니다. “민지야,어서 가자!” 예쁘게 화장을 한 엄마가 민지에게 노오란 개나리꽃색깔 코트를 입혀줍니다 엄마의 손을 잡고 골목길을 걸어가는 동안 민지의 가슴은 콩당콩당 뜁니다. ‘어떤 친구를 만날까? 예쁜 친구를 사귀어야지.선생님말도 잘 들을꺼야.’ 학교 안으로 들어서자 부모님의 손을 잡고 운동장에서 서서 재잘거리는 아이들로 시끌벅적합니다.단상에 서 있는 교장선생님의 머리카락이 반쯤 벗겨진 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우스워 민지는 저 혼자 키득거립니다. “에,,저희 용문초등학교는 역사가 60년인 명문 초등학교로....여러분이 훌륭한 인재가 되기를 삼가 바랍니다.” 박수소리가 나고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자,엄마는 민지의 손을 잡고 호르라기 부는 소리를 따라갑니다. 1-8이란 하얀 푯말앞에 다가가자 수십명의 아이들이 흥분된 얼굴로 서로를 힐끔 바라보며 줄을 서 있습니다.선생님의 뒤를 따라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섭니다. “여러분 반가워요. 선생님의 이름은 조귀순이예요. 앞으로 친해져요.” 짓굿게 생긴 남학생이 귀신이래...라고 외치자 아이들 모두 깔깔거리며 웃습니다.민지는 놀리는 남학생을 흘겨보았지만 이미 번진 웃음은 봄햇살처럼 교실안을 부드럽게 일렁거렸습니다.한사람 한사람씩 출석을 부른 선생님은 모두들 교실 뒤로 서게 하고 짝을 지워주기 시작합니다. 32번 신민지.. 31번 박현정. 민지는 옆으로 다가온 현정이의 얼굴을 보았습니다.약간은 동그넙적한 얼굴에 눈이 시원스럽고 개구쟁이같은 표정이 서려있어 새침한 민지의 짝으로는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단발머리의 현정이가 먼저 민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안녕,노란 병아리같네.근데 너 화장실가면 안된다.” “응,왜?” “우리 학교 화장실에 귀신이 산대. 진짜 눈알이 빨간 똥귀신” 겁을 잔뜩 먹은 민지의 모습이 재밌다는 듯 몸을 민지쪽으로 돌려 깔깔거리며 웃는 현정이의 몸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민지의 눈에 들어온 건 춤추는 듯 허공에서 나팔거리는 현정이의 왼팔이었습니다.아니,정확하게 말하자면 주인을 잃은 빈 소매자락이 현정이의 떨림에 따라 가을하늘에 부드럽게 나부끼는 깃발처럼 출렁거렸습니다. ‘파,,,팔이 없어...’ 민지는 너무 놀라서 몸이 돌상처럼 굳어졌습니다. 한참을 웃던 현정이는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기 위해 오른 손을 올렸습니다. 피부가 얼기설기 이어진 체,가운데와 새끼손가락이 사라진 세 개의 손가락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현정의 단발머리를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황급히 고개를 돌린 민지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누군가가 자신을 끌어당기듯 아득한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나, 학교 안가!!” 발을 동동 구르며 악을 쓰듯 엄마에게 대드는 민지를 보다 못한 아빠가 민지를 안고 달래봅니다. “아가씨가 안 좋은 일이 있었나? 학교 가고 싶다고 가방 사달라고 때 쓸 때는 언제고 이제는 가기 싫어?” “몰라! 싫어!” 토라져 제방으로 들어간 민지를 보며 엄마는 과일을 내려놓으며 걱정스레 민지의 아빠에게 얘기를 건냅니다. “어떻게 하죠? 짝을 바꿔달라고 할까요?” “....한쪽 팔이 없는 애라.." 말없이 사과를 베어 물던 아빠가 조용히 입을 여십니다. “기다려 봅시다.어차피 누군가가 짝이 되어야 할테니.스스로 감당해낼 때까지 지켜보는 수밖에...” 그날 밤 민지는 꿈을 꾸었습니다. 어두운 숲 속을 달려가는 민지에게 검은 옷을 입은 현정이가 입가에는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빨간 눈으로 민지를 부르며 세손가락 남은 팔을 들어 민지를 쫒아오는 것 이었습니다.아무리 발버둥쳐도 민지의 발은 여전히 허공에서 제자리걸음을 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민지는 학교에서 가급적이면 옆자리의 현정이를 보지 않으려 애썼습니다.현정이는 체육시간에도 잘 뛰어 다니고,음악시간에도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지만 민지에게는 현정이가 언제나 낯설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벚꽃이 화사하게 핀 오후에 민지는 반 친구들과 어울려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습니다.술래를 피해 느티나무 둥치에 몸을 피하고 고개를 살짝 앞으로 내밀때였습니다.누군가가 민지를 등 뒤에서 가만히 안는 것 이었습니다.동시에 팔로는 민지의 두 눈을 가렸습니다. “누구게?” 청록색의 투명한 어둠이 민지의 눈앞에 아른거려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등위로 전해지는 따스한 체온이 그대로 전해져 왔습니다.병아리를 품는 어미의 품처럼 보드라운 양털이불처럼 민지를 꼭 껴안고 있는 이 애는 누구일까? “수진이? 지연이? ..보라?” “아니,,,” 민지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의 이름을 죄다 불러보았지만 따뜻한 품은 계속 아니라고만 합니다. “누군데,,,지금 장난하는 거지?” 한창 약이 오른 민지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손을 떼어내려 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이때 손이 풀리면서 민지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나야,현정이!” 민지는 두 다리가 탁 풀리면서 등 줄기에서 찌릿한 뭔가가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온몸에 소름이 돋은 민지는 눈을 떴습니다.민지의 앞에서 넙덕한 얼굴에 커다란 입으로 아침 나팔꽃같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것은 분명 외팔이 현정이었습니다. 붓대꼬리를 흔들며 민지에게 애교를 부리는 흰둥이는 민지의 손 여기저기를 세심하게 핥습니다. ‘흰둥이는 현정이를 무서워하지 않겠지? 눈으로 보거나 안보거나 똑같이 대하겠지?’ 영문을 모르는 흰둥이는 여전히 민지앞에서 재롱을 피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분명 아까 그 품은 너무나 따뜻하고 포근해서 사랑이 넘쳤는 데..난 잠시지만 너무나 행복했어.날 이렇게 사랑해주는 친구가 있구나 하는 마음에.. 그런데,그 보드라운 팔이 현정이의 외팔이었다는 걸 안 순간 난 너무나 무서웠어.내 눈을 가린게 그 엉킨 손가락 세 개...아냐...아냐..’ 민지는 그날 밤 잠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날 민지는 학교에서 하루종일 자기 마음에 대해 묻고 또 물었지만 그럴수록 자기 자신만이 미워질 뿐이었습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민지야, 화장실 같이 안 갈래? 내가 망봐주께.” 현정이의 제안에 사실 민지도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었지만 왠지 학교 화장실이 무서워 한번도 가지 않은 터였습니다.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민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랫배가 부풀어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이러다가는 집까지 갈수가 없을것 같았습니다.이때 뒤에서 현정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민지야,너 아직까지 참았어? 나 지금 나올꺼 같애.” “나두,,급해.” “잠깐만! 좀만 가면 내가 다니는 성당이 있어.거기까지 갈수 있지?” 민지는 현정이의 말이 참 반가왔습니다 발걸음을 어기적거리며 둘이는 가까스로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니가 먼저 들어가.” “아냐, 니가 먼저.” “나,참을 수 있어.얼른 가.” 현정의 완강한 거부에 민지는 떠밀리다시피 화장실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환해진 기분으로 밖에 나온 민지를 보자 현정이는 천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나, 안가도 될꺼 같애.” 아뿔싸! 현정이의 바지 밑으로 한줄기 물살들이 땅을 적시며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민지는 미안하기도 하고,우습기도 해서 현정이를 바라보았습니다.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어느새 비밀을 간직한 공범자가 되어 성당의 종소리처럼 맑은 웃음을 하늘 가득 날리어 보냈습니다. 민지는 이제 더 이상 현정이에게 크레파스를 빌려주는 일이 꺼려지지 않았고,삐뚤빼뚤하게 쓰는 자신의 글씨보다 세 손가락의 현정이가 쓴 또박또박한 글씨가 더 낫다고 엄마가 골려도 동조하며 고개를 까닥거릴 수 있었습니다. “세살 때 철길에서 놀다가 기차가 지나가는 바람에 다친 거래.난 기억이 하나도 안나.엄마는 그 후로 집을 나갔고,지금은 할머니랑 살어.우리 집에 갈래?” 자갈이 늘어선 철길을 따라 걷는 두 소녀의 머리위로 하얀 나비 두마리가 팔락팔락 날아듭니다.민지는 현정의 팔랑거리는 왼 팔이 왠지 나비의 날개짓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정이의 집은 철길 위 비탈에 위태롭게 세워져 있었습니다.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하얀 머리의 할머니가 허리를 세우며 일어나 반갑게 맞이하십니다. 며칠 전 미술시간에 영재가 현정이 엄마는 머리가 하얗다고 놀리던 현정의 그림과 똑같이 닮은 얼굴에 까만 지렁이가 지나간 듯 깊은 주름이 패인 할머니였습니다.어릴적 사진을 보여주며 현정이는 즐거워했습니다. 철길 건널목을 지나 현정의 배웅을 받으면서 민지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민지에게 주실 것이 있으면 앞으로 절반은 현정이에게 나눠주세요.그래도 민지는 행복할 꺼예요.” 매미울음이 나뭇잎들을 파랗게 물들이기 시작할 즈음,민지는 무거운 마음으로 등교 길에 올랐습니다.말이 없는 민지가 신경이 쓰이는 지 현정이가 자꾸만 묻자 민지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현정이에게 건네줍니다. “이거 받아.” 포장을 벗기자 유리 상자에 담긴 하얀 나비 한쌍이 보드라운 날개를 펴고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합니다. 현정이는 날개가 다치면 안된다며 소중히 받아들더니 민지에게 연필하나를 줍니다. “할머니가 입학식 날 사주신 건데 이걸로 쓰면 글씨가 잘 써져.천천히 쓰면 너네 엄마도 좋아하실꺼야.” 종례시간이 되자 선생님은 민지를 앞으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동안 우리와 같이 생활하던 조민지 학생이 아빠 회사일로 멀리대구로 전학을 가게 되었어요.우리 민지가 거기서도 좋은 친구들 만나고 잘 지내라고 다 같이 박수를 보내줘요.” 민지는 맨 뒤에 앉아있는 현정이를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현정이의 얼굴을 보면 하루종일 참고 있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아이들의 박수소리가 교실 안을 메우기 시작하자 민지는 가만히 고개를 들었습니다.애써 눈물을 참고 있던 민지의 두 눈동자에 현정의 모습이 담겨졌습니다.순간 민지는 현정아!하고 소리쳐 외칠 뻔했습니다. 옆자리가 빈 체 창가자리에 홀로 앉은 현정이가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팔이 하나밖에 없는 현정이는 손바닥을 마주치지 못하고 대신 자신의 가슴에 오른 팔을 올려 굽은 세 개의 손가락을 최대한 벌린 체 심장에 대고 민지를 바라보며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민지의 두 눈엔 어느새 맑은 눈물 두 줄기가 뺨을 타고 흘리고 있었습니다. ‘현정아,사랑해! 널 잊지 않을 꺼야 ...고마워’ 민지와 현정의 가슴속에 하얀 나비한쌍이 날개를 펄럭거리며 하늘위로 날아오릅니다. 임장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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